'독서모임'에 해당되는 글 4건
- 2016.08.17 E#4 콜레라시대의 사랑,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 2016.08.16 E#3 - 비행운, 김애란
- 2016.08.12 E#2 L의 운동화, 김숨
- 2016.08.12 E#1 - 앵무새죽이기, 하퍼리
콜레라시대의 사랑,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송병선, 민음사 2004
초이 네번째 모임-
그 전에 초이가 읽었던 박웅현선생님의 다시, 책은 도끼다에서 추천했던 도서다. 초이는 현실적인 사랑 이야기에 이끌려서 읽어보고 싶다고 했다. 총 2권으로 되어있는 책인데 10일만에 2권을 읽기는 무리라고 판단해서 일단은 1권을 사서 읽어보고 그 다음에 2권을 읽자고 이야기했다.
결과적으로 이야기하면 2권은 절대 손도 안 댈 것이다. 1권을 읽어내려가는 것이 정말 힘들었다. 이게 뭐...뭐시기.. 뭐 무슨 문학상도 타고 세게적인 어쩌고......뭐시... 블로그를 찾아봐도 좋은 이야기도 많고, 인생 책이라는 사람도 있던데- 물론개인취향은 존중하는 바입니다- 나는 글쎄....... 내가 책을 그래도 많이 읽어왔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그런 내게도 읽어내려가는게 쉽지가 않다.
내가 근래간 읽었던 책 중에서 최악으로 손 꼽으면 주저없이 이 책을 꼽고싶다. 예전에는 안 좋은책도, 좋은 책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 안 좋은 책, 안 좋은 문장에서도 배울거리가 있다라고 생각하는 주의였다- 그러다가 근래에 세상엔 이렇게 좋은 책이 많고, 좋은 문장들이 많은데, 그런 책을 읽어나가기도 바빠 죽겠는데 안 좋은 책을 굳이 봐야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영화도 마찬가지고, 사진도 마찬가지고, 그림도 마찬가지고, 만화책도 마찬가지다-! 이 책이 독서모임의 추천책으로 꼽지 않았다면 나는 책 중간에 읽기를 포기했을 것이다.
일단 문장 자체가 굉장히 재미없다. 근데 그렇다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재미있냐? 그것도 아니다. 280페이지의 1권에서 첫 80페이지는 박사에 대한 이야기, 그 다음 한 100페이지는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좋아하는 이야기, 그 다음 한 100페이지는 또 둘 사이가 멀어지는 이야기. 한 세개 정도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너무나 많은 페이지를 써내려갔다. 아무런 의미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지루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게 짜여있다. 그렇다고 좋은 문장들이 곳곳에 있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현실'적인 사랑 이야기를 슬로건으로 삼고 마케팅을 당했는데, 이런것보다 훨씬 현실적인 이야기를 이 전에 읽었다고!
p.9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p.87
그녀는 두 사람이 서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며 불신하기로 했지만 자신이 그를 정말로 사랑했다는 사실을 그가 알고서 이 세상을 떠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시간만이라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p.94
그녀는 이를 깨닫지 못하고 자고 있었지만, 꿈을 꾸면서도 자신이 아직 살아 있다는 것과 침대의 반 쪽이 텅 비어 있다는 것. 평소처럼 침대 왼편에서 한쪽으로 몸을 돌려 자고 있지만, 침대의 다른 편에 다른 몸의 무게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p.117
편지의 회답을 기다리는 그의 태도가 너무 수동적이라며 나무랐다. 그러면서 용기 없는 사람은 절대로 사랑의 왕국에 들어갈 수 없으며, 그 왕국은 잔혹하고 무자비한 곳이고, 여자는 결단력 있는 남자에게만 인생을 맡기며, 결단력은 여자들의 인생을 살아가면서 너무나 갊아하게 되는 안정감을 불러일으킨다고 말했다.
p.120
그녀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아무 때나 화장실에 틀어박혀 지냈으며, 그의 편지를 읽고 또 읽으면서 58개의 단어를 이루고 있는 314개의 글자 속에서 그 글이 말하고 있는 것 이상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그 곳에 숨겨진 마술적 공식, 즉 비밀의 암호를 알아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처음에 읽었던 내용 이상은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 나는 이 문장이 이 책을 읽은 나의 감정을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굉장히 로맨틱하게 흘러갈 줄 알았던 책의 줄기는 점점 절정을 향해 올라가는가 싶더니 독자의 기대를 배반해버리고는 쿵- 하고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땅으로 곤두박질 친다.
'58개의 단어를 이루고 있는 314개의 글자 속에서' 라는 표현에서 뒤에 무언가 나오겠구나 하는 기대심리를 '처음 읽었던 내용 이상은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라고 그 기대심을 무참히 박살내버린다. 그러곤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이야기 전개. 이 책을 읽은 나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무언가 나오겠지, 무언가 나타나겠지- 하는 기대심으로 끝까지 읽어내려갔지만 그 기대심이 무참히 박살나버린듯한 느낌.
p.128
그 봉투에는 학교 공책을 찢은 조각이 담겨 있었는데, 거기에는 연필로 쓴, 다음과 같이 단 한 줄의 문장이 적혀 있었다. "좋아요. 나한테 가지를 먹이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당신과 결혼하겠어요."
- 이런건 귀여운 문장이지-
p.178
그녀는 너무나 아름답고 너무나 매력적이었으며, 보통 사람들과는 너무나 달라보였다. 그래서 그는 그녀의 구두가 딱딱거리면서 돌길 위를 걸을 때 왜 아무도 자기처럼 정신을 잃지 않는지, 그녀의 베일에서 나오는 숨소리에 왜 아무도 가슴 설레하지 않는지, 그녀의 땋은 머리가 바람에 휘날리거나 그녀의 손이 공중으로 날아 오를 때, 혹은 황금 같은 미소를 지을 때에도 왜 모든 사람이 사랑에 미치지 않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 이 문장은 참 좋은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280페이지를 읽어나가며 딱 한 문장.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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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운, 김애란, 문학과지성사, 2012
초이 세번째 모임. 이 책은 나의 추천도서였다. 누군가 김애란의 소설집에 대해 단편소설인데 하나하나 긴 여운을 남기는 책이라고 소개했던 글이 생각나 읽고싶어서 추천하였다. 책을 읽는 내내 그 말이 무슨 이야기인지 공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은 매우 현실적인 이야기이다. 매우 현실적이면서, 매우 아픈, 아름답지 않은 현실 그 자체를 담담하게 그려낸다.
이 소설, 꽤 위안이 된다. 그 아프고, 아름답지 않은 소설을 읽으면서 많은 위로를 받는다. 김애란의 문장들, 혹은 소설들이 내게 말을 건넨다. 그 슬픔에 대한 위로가 절절하지 않아서 좋다. 그저 담담하게 혹은 무심하게 나의 손을 잡고 걷는다. 너도 힘들지? 그래도 괜찮아- 하고는. 아무런 형용사도, 아무런 수식어구도 없다. 내가 말하지 않았지만 내가 힘든 것을 알아주고는. 하 새끼, 힘내라 인마- 다 그런거야. 하고는 그냥 툭 던져주는. 그 심심한 위로가 더 큰 위안이 되었다. 김애란의 소설은 내게 그렇게 다가왔다.
누군가는 너무 어둡고 불행하다면서 이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그것도 무슨 말인지 이해는 간다.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소설을 읽었는데 그 안에서 현실보다 더 적나라한 현실을 마주친다면 마음이 불편하기 마련이니까. 나는 그 현실이 마음에 들었던 것이지만.
예전엔 슬플땐 우울한 기분을 벗어나기 위해 신나는 음악을 듣고, 재밌는 예능을 보고, 즐거운 책을 읽어야한다고만 생각했는데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기분이 우울할땐 외려 바닥을 치자, 그 우울의 바닥에서 헤엄치며 우울을 천천히 즐기다가 올라오자- 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요즘은 우울할 땐, 일부러 우울한 노래를 찾아 듣고, 우울한 책을 알아보는 편이다. 그렇게 우울함의 시간을 한참동안 헤메고 나면 결국 남은 것은 다시 올라가는 것 뿐임을 이제는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그런우울함 속에서 헤메는 시간이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도 이제는. 알게 되었으니까.
p.14
아마, 그래서 였을거다. 훗날 누군가 내게 사랑이 무어냐고 물어봤을 때, '나의 부재를 알아주는 사람' 이라고 답한 것은.
p.86
천 개의 잎사귀는 천 개의 방향을 가지고 있었다. 천 개의 방향은 한 개의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살아남는것, 나무답게 번식하고 나무답게 죽는 것. 어떻게 죽는 것이 나무다운 삶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런 게 종 내부에 오랫동안 새겨져 왔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p.144
오늘이 내일 같고, 어제가 그제 같은 날들이 이어졌다. 아침이 저녁 같고 새벽이 저물녘 같은 하루가 반복됐다. 오랫동안 한 곳에 고립돼 있다 보니 날짜 감각이 무뎌지는 것 같았다. 세상은 낮에도 어둡고 밤에도 어두웠다.
- 이런 문장은 내가 좋아하는 문장이다. 말장난같은 문장.
p. 97
이따금 기억에 남는 말들이 있었다. 도시 곳곳에는 한쪽 손을 번쩍 들어 택시를 잡은 뒤, 술에 취해 아름답고 어그러진 말들을 차비처럼 내려놓고 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때론 두서없고 엉뚱한, 어느 대는 철렁하고 알 수 없는 말들을 반짝이는 동전처럼 흘리고 가는 이들이, 용대의 마음을 흔들었다.
p.133
"제 자리는 어디입니까?" 어디. 언제나 '어디'가 중요하다. 그걸 알아야 머물 수도 떠날 수도 있다고. 그 말이 당신을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줄 거라고. 그 다음, 그 곳에 어떻게 갈 지는 당신이 정하면 된다고. 뜻 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길 잃은 나그네에게 친절하다고. 그러니 외지에 나가선 대답하는 것보다 질문할 줄 아는 용기가 중요하다고.
p.164
용대는 눈이 뒤집어져 "이게 정말?" 하고 한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러고는 그대로 주저앉아 아이처럼 꺼억꺼억 울기 시작했다. 불명확한 발음으로 씨발년아, 미친년아, 개같은년아를 반복하며, 자길 속인 여자, 이용한 여자, 끝까지 순진한척하는 여자, 이 나쁜 여자를, 살리고 싶다, 생각하면서.
- 이 문장은 참... 읽을수록 먹먹해진다. 용대의 감정이 고스란힌 내게 전해진다.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되뇌이면 되뇌일수록 너무 슬픈 문장이다.
p.178
자신이 이 세상의 풍습에 속하고, 푸옥을 지키는 사람이라는게 좋아서였다. 기옥 씨에게는 요즘 그런 게 필요했다. 때가 되면 중년들이 절로 찾게 되는 글루코사민이나 감마리놀렌, 혹은 오메가3처럼- 몸이 먼저 알아채 몸이 나서서 요구하는 것들이, 이를테면 설에는 떡국이, 보름에는 나물이, 추석에는 송편이, 생일에는 미역국이, 동지에는 팥죽이 먹고 싶다는 식의, 그래야 장이 순해지고, 비로소 몸도 새 계절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다는, 어느 때는 너무 자명해 지나치게 되는 일들이 말이다. 제사는 조상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지내줘야했다. 기옥 씨는 음식으로 자기 몸에 절하고 싶었다. 한 계절, 또 건너왔다고,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고, 시간에게, 자연에게, 삶에게, '내가 네 이름을 알고 있으니, 너도 나랑 사이좋게 지내보자' 제안하듯 말이다.
p.207
세계는 생각보다 썩기 쉬운 물질로 이루어져있다.
p.251
은지가 조그맣게 끄덕인 건 이제 그들도 더 이상 어리다고 할 수만은 없는 나이가 되어서였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어둑한 술집에 죽치고 앉아, 줄담배를 피우며 지적이고 허세 어린 농담을 주고받다 봄 세상이 조금 만만하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어느 날 자리에서 눈을 떠보니 시시한 인간이 돼 있던 거다. 아무것도 되지 않은 채, 어쩌면 앞으로도 영원히 이 이상이 될 수 없을 거란 불안을 안고, 아울러 은지와 서윤은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이 가진 것 중 가장 빛나는 것을 이제 막 잃어버리게 될 참이라는 것을.
- 이 비행운이라는 단편소설집에서 호텔 니약 따와 서른 이라는 소설을 빼고는 이야기 할 수 없을 것 같다. 나를 울리는 문장들이 너무 많았다. 내가 고민하던 스물여섯, 스물일곱, 스물여덟에 대한 이야기가. 내가 성급했고, 나 자신을 독촉할 수 밖에 없었고, 나를 힘들게 했던, 나를 지치게 만들었던 그 시간들이 이 소설속에 있었다. 그래서 읽는 내내 너무 아팠다. 그리고 이 소설은 나를 위로해줬다. 괜찮다고. 괜찮다고. 괜찮다고-
p.263
그러니까 좀 생뚱맞긴 해도, 은지가 스피커를 가져온 것에 서윤이 반대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사실은 좀 기쁘기까지 했다. 소리에도 겹이 있다는 것, 좋은 스피커를 통과한 소리는 음악이 아니라 건축이 된다는 것, 그것도 그냥 건물이 아니라 대성당이 된다는 걸 서윤도 어렴풋이 경험해봤기 때문이다.
p.277
은지는 MP3플레이어에서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찾아 재생 단추를 누른 뒤 불을 껐다. 은지는 새우잠을 자듯 모로 누워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연주곡을 경청했다. 그러곤 '1700년대 바흐가 작곡한 음악을, 2000년대 캄보디아에 온 한국 여자가 1900년대 글렌 굴드가 연주한 앨범으로 듣는구나' '이상하고 놀랍구나' 하고 생각했다. 세계는 원래 그렇게 '만날 일 없고' '만날 줄 몰랐던' 것들이 '만나도록' 프로그래밍돼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 이런 문장은 친구들에게 내가 써먹고 싶은 문장이다. 좋은 말이다. 만날 일 없고 만날줄 몰랐던 것들이 만나도록 프로그래밍 되어있는 것이라-
P.292
8년, 8년이라니. 괄호 속에 갇힌 물음표처럼 칸에 갇혀 조금씩 시들어갔을 언니의 스물넷, 스물다섯, 스물여섯- 서른하나가 가늠이 안 됐거든요.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는 동안 마음속에 생기는 온갖 기대와 암시, 긴장과 비관에 대해서라면 저도 꽤 아는데, 자식 노릇, 애인 노릇 등 온갖 '도리'들을 미뤄오다 잃게 된 관계들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는 바는 아닌데, 좁고 캄캄한 칸에서 오답 속에 고개를 묻은 채, 혼자 나이 먹어갔을 언니의 청춘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어요.
P.293
저는 지난 10년간 여섯 번의 이사를 하고, 열 몇 개의 아르바이트를 하고, 두어 명의 남자를 만났어요. 다만 그랬을 뿐인데, 정말 그게 다인데, 이렇게 청춘이 가버린 것 같아 당황하고 있어요. 그동안 나는 뭐가 변했을까. 그저 좀 씀씀이가 커지고, 사람을 믿지 못하고, 물건 보는 눈만 높아진, 시시한 어른이 돼버린 건 아닌가 불안하기도 하고요. 이십대에는 내가 뭘 하든 그게 다 과정인 것 같았는데, 이제는 모든 게 결과일 딸므인 듯해 초조하네요. 언니는 나보다 다섯 살이나 많으니까 제가 겪은 모든 일을 거쳐갔겠죠? 어떤 건 극복도 했을까요? 때로는 추억이 되는 것도 있을까요? 세상에 아무것도 아닌 것은 없는데, 다른 친구들은 무언가 됐거나 되고 있는 중인 것 같은데, 저 혼자만 이도 저도 아닌 채, 아무것도 아닌것이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불안해져요. 아니 어쩌면 이미 아무것도 아닌 것보다 더 나쁜 것이 되어 있는지도 모르고요.
- 292페이지와 293페이지의 이런 문장들을 읽으며 내 청춘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이런 문장들 때문에 처음에 그런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던 것이다.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문장으로 담아낸 김애란이 무섭다. 그런 생각을 한 적있었다. 나이가 들고, 누군가는 환경미화원을 하고, 누군가는 경비원을 한다. 그들을 비하하려는 의도는 없다. 다만, 그들이 10대 혹은 20대일때, 그들은 과연 자신의 꿈을 이야기할 때, 눈빛이 반짝반짝 빛날 때 과연 그런 꿈을 이야기했었을까? 그들은 자신이 환경미화원 혹은 경비원이 될 것을 알았을까?
그리고 그 누군가는 메꿔야하는 그 자리에. 나는 내가 들어가지 않을 수 있다고 확증할수 있을까? 하는 물음들이 빗발쳤다. 예전에 삼촌이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 순 없을지언정,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면서 살지는 않아야 되지 않겠냐"고 했었는데. 나는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라는 물음. 이것은 냉혹하지만 현실에 대한 이야기다. 현실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차갑고, 냉정하다.
p297
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 겨우 내가 되겠지.
- 이 몇 단어 되지 않는 한 문장의 울림이... 너무나도 커서 나는 이 문장을 몇 번이고 곱씹었는지 모른다.
p.315
언니, 가을이 깊네요. 밖을 보니 은행나무 몇 그루가 바람에 후드득 머리채를 털고 있어요. 세상은 앞으로 더 추워지겠죠? 부푼 꿈을 안고 대학에 입학했을 때만 해도 저는 제가 뭔가 창의적이고 세상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며 살게 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보시다시피 지금 이게 나에요. 누군가 저한테 그래서 열심히 살았느냐 물어보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을것 같은데. 어쩌다. 나. 이런 사람이 됐는지 모르겠어요.
- 이런 문장을 주면, 울 수밖에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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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의 운동화, 김숨, 민음사 2016
초이 두번째 만남. 초이의 진행방식은 이렇다.
1. 한달에 3번 보기로 할것.( 매 10,20,30일, 단 서로의 일정으로 조정해야될시 조정한다. 조정이 불가피할 경우에는, 아예 다음 만남으로 미루고, 책을 두 권 읽고 와서 진행하기로 한다.)
2. 첫 10일은 자율도서, 20일은 내가 추천해준 도서, 30일은 상대방이 추천해준 도서를 읽기로 한다.
3. 책을 읽는 것에 부담을 갖지는 않고 전부 읽고 오지 못해도 되지만 최소한의 예의는 갖출 것. (ex 드라마를 보느라 다 못읽었다-라는 둥. 독서모임을 하는 의미를 퇴색케하지 않도록.
4. 만남이나 이야기 진행방식은 각자가 알아서 준비해올 것.
-
이 정도의 규칙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번은 자율도서를 읽을 차례. 나는 L의 운동화를 읽었다. 김숨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작가다. 예전에 국수라는 단편소설을 접하고, 이 사람은 정말 미친건가?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꼭 김숨의 국수라는 소설을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어쨌든, 서점에서 김숨의 신간이 나온게 있나 찾아보다가 얼마전에 이 책이 나왔다는 것을 알고 망설임 없이 구매했다.
L의 운동화. 제목만 보고도 언뜻 아는 사람들은 파악했을 것이다. 어느 이야기가 강물이 되어 흘러갈지. 그렇다. 이것은 이한열 열사의 이야기다. 이한열 열사의 이야기이자,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고, 1987년의 어느 날에 대한 이야기이자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어느 날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실 나도 1987년 6월에 대한 이야기를 잘 모른다. 그저 이한열이라는 사람이 존재했고, 그리고 그 전에는 박종철이라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만 알았다. 내가 태어나기 얼마 전의 이야기였지만 나에게 그것은 역사속의 이야기였고, 내가 그들의 이야기를 접한것은 이미 그들의 이야기가 20년은 지난 다음이었다. 그 시절이 내게 와닿지 않았다. 나에게 이한열이라는 사람이 처음으로 실체화 되었던 것은 이번년도 6월이었다. 연세대에 볼 일이 있어서 가는 길에, 정문에서 나는 이한열의 추모비와 몇 송이의 국화를 봤다. 그 날은 비도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다. 그게 이한열에 대한 실존의 기억으로는 처음이었다. 나는 그 시절 속에 살지 않았으니까. 그들은 내게 그저 텍스트인 사람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김숨의 문체를 좋아한다. 이 책이 아쉬웠던 건 김숨의 냄새가 많이 배어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저 다큐멘터리 같은 하나의 실재했던 일들을 문장화한 소설이기 때문에 김숨도 자신의 것들을 많이 배어놓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숨의 문체를 보고싶어 읽었던 내게는 그런 부분이 아쉽게 다가온 소설이다.
소설의 모든 부분은 실재다. 모든 부분이라고 하기는 혹시 모르니까, 정정하자. 내가 느끼기에 대부분. 이한열이 운동화를 잃어버린 것도, 그 운동화를 되찾은 것도, 그리고 그것을 복구시킨것도.(사실 정말 얼마전에 복구했다! 2015년) 소설을 읽으며 이런 부분까지 어떻게 알고 글을 썼지? 싶을 정도로 너무 전문적인 이야기가 나와서 궁금했는데, 역시 그 복원작업가가 있었다.
그런 김숨의 색채가 없는 것을 빼고 소설 자체만 놓고 본다면 흠, 글쎄- 한 번 정도 읽어볼 만 하지만 누군가에게 추천할 정도는 아니지 않나? 라는 느낌일까. 물론 그런 역사적인 이야기를 복원작업가를 가지고 와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은 신기한 소재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말이다. 너무 팩트가 확실한 이야기들로만 글을 썼기 때문에 글 자체는 심심한 느낌이 많이 났던듯 싶다. 그렇지만 미학적인 접근과 현대예술에 대한 내가 모르는 이야기들은 알아가게 된 것은 굉장히 좋았다. 내가 그런 부분들을 좋아하기 때문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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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똥, 정량 30g, 원상태로 보존. 1961년 5월에 생산포장' 이라는 문구가 인쇄된 라벨을 4개 국어로 써서 붙이고 납땜으로 밀폐시킨 작품으로 그는 의미 부여를 중요시하는 사회를 향해 "의미없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이 의미있다." 는 메세지를 전달하려는 의도로 그 작품을 만들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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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아무리 오래되고 낡았어도 사람이 살고 있으면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적이 있다.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의 온기가 뼈대처럼 집을 떠 받치고 있어서. 사직터널 근처 빌라에 살 때. 금방이라도 폭삭 주저앉을 것 같은 집을 지키면서 사는 노파를 본 적이 있었다. 함석지붕이 호떡처럼 납작하게 주저앉은 집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철근도, 콘크리트 벽도 아니 노파의 숨결과 온기였다. 밤마다 노파가 밝히는 형광등 불빛, 티브이 소리, 밥이 뜸 들 때 밥솥에서 피어오르는 김, 냄비에서 바글바글 끓는 국 냄새, 자식들과 전화 통화하는 소리, 설거지하는 소리였다. 그것들이 철근 구조보다 강력한 뼈대가 되어 집 천장을, 금 가고 기울어진 벽들을, 들뜬 창문들을 떠 받치고 있었다.
-이런 문장들이 내가 원하던 김숨의 색채가 들어간 문장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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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어머니는 연년생인 형과 내게 유니폼처럼 똑같은 옷을 사 주고는 했다. 한낱한시에 똑같은 옷을 사 주는데도 형의 옷이 번번이 먼저 해지는 것을 나는 의아해했고, 습관 뿐 아니라 성격과 기질이 그 사람의 옷과 신발과 가방 같은 물건에 고스란히 기록된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깨달았다.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물건들은 그 개인의 기록물이기도 하다는 걸.
- 이 문장은 빅 무니즈의 웨이스트랜드 사진작업에 나오는 카타도르가 생각이 났다. 그들이 했던 이야기중에 자신들은 그 집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보면 그 집이 상류층인지 중상층인지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다고.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우리의 어떤 것들은 분석당하고 파악당할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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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받지 못한 개들은 일정한 기간이 되면 안락사 처리된다는 것을 잘 알기에. 절박한 개들 속에서 보다 어린 개, 보다 건강해 보이는 개, 보다 영리해 보이는 개, 보다 마음을 끄는 개를 고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란다고 했던가. 버려진 개는 서른 마리인데, 그 중 단 한 마리만 선택해야 한다면 어떤 개를 골라야할까. 내가 선택한 한 마리를 제외한 나머지 스물아홉 마리는 안락사 처리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한 마리만 골라야 한다면.
- 그냥 이 문장을 읽고는 기예르모 베르가스의 굶어죽는개 전시회가 생각이났다. 나도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지만 선의속에 숨어져있는 위선이랄까.. 유기견을 키우는 것은 분명히 칭찬받아 마땅한 착한 일인데 그 속에서 일어나는 속사정은 사실 그리 착하지만은 않은걸까. 라는 생각.
p.108
"똑같은 재봉틀이어도, 옆집 재봉틀과 내 어머니의 재봉틀은 다를 것입니다. 내 어머니의 재봉틀은 처음에는 옆집 재봉틀과 똑같은 재봉틀이었지만, 어머니의 아우라가 더해져 다른 재봉틀이 되었을 것입니다. 똑같은 상표의 운동화여도, 옆집 아이의 운동화와 내 아들의 운동화는 다르겠지요. 어떤 여자가 아들의 운동화를 복원해달라고 복원가를 찾아온다면, 그 운동화가 그 여자에게는 세상에 둘도 없는 특별한 운동화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운동화가 귀한 물건도 아니고, 새 운동화를 얼마든지 사 신길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차마 버리지 못하고, 심지어 운동화 값보다 비싼 값을 치르더라도 그것을 어떻게든 복원해 간직하고 싶어 하는 데는 말이지요. 지극히 사적인 의미와 가치가 저를 설득하거나 매혹할 때, 저는 복원하고 싶은 의지와 욕구를 느낍니다.
- 이것은 사실 어떤 특정화에 대한 이야기이다. 뒤샹이 R.Mutt1917 이라고 특정짓는 순간 그것이 일상품과 예술품의 경계를 허물게 되었듯이, 처음에는 똑같은 제품이었겠지만 그것을 누군가와 다르게 보게 되는 것, 무언가와 차별화 되는 것은 그 '특정지음' 이라는 행위가 있고난 다음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어머니가 쓰셨던 것이든, 내 아들이 신었던 것이든, 그저 R.Mutt라는 사인을 지은 것이든. 이것은 김춘수의 꽃에서 나오는 이름을 불러주는 것과 어린왕자에서의 어린왕자와 여우사이의 관계도 그럴것이다. 모든 것은 그 '특정지음' 으로 인해서 관계가 달라지는것이 아닐까.
p.197
이틀 내내 잠자코 지켜보기만 할 뿐, 나는 L의 운동화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더 어려울 때가 있다. 뭔가를 할 때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p.229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작품은 유명한 '헝가리식 식사'로 평론가 장 자크 레베크가 1963년 3월 9일에 한 식사의 기록입니다. 식사가 끝나고 남은 음식들과 접시, 술잔 등이 달려있는 식탁의 풍경은 우리가 직면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덫으로 잡듯이 포착해 보여줍니다. 누군가는 어떻게 저런 것이 예술이 될 수 있느냐고 따지겠지요. 그러나 생각해보면 우연한 것들, 계획에도 없던 것들, 지나가는 것들, 지나가지만 일상에서 반복되는 것들이 우리의 삶을 결정짓고는 합니다. '덫에 걸린 그림들' 을 통해 스포에리는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요? 일회적으로 소비되는 가치를 영원으로 고정시켜 보여줌으로써 근원적인 가치에 대해 이야기 하려 했던 것이 아닐까요.
p.274
하루 종일 나는 L의 운동화 곁에 머문다. 머물기만 할 뿐 L의 운동화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다만 지켜볼 뿐이다. 여전히 작업하는 시간보다 지켜보는 시간이, 기다리는 시간이 더 길다. 그리고 여전히 L의 운동화는 내게 말을 걸어오지 않는다.
P.100
내가 복원해야 하는 것은, 28년 전의 L의 운동화가 아니다. L이 죽고, 28년이라는 시간을 홀로 버틴 L의 운동화다. 1987년 6월의 L의 운동화가 아니라, 2015년 6월의 L의 운동화인 것이다. 28년전 L의 발에 신겨 있던 운동화를 되살리는 동시에, 28년이라는 시간을 고스란히 앉아내야 하는 것이다.
p.216
삼화고무에서 나온 흰색 타이거 운동화가, 영문으로 타이거라고 쓴 로고가 붙어있던 그 운동화가 실은 제게도 있었습니다. 어디 저 뿐이겠습니까. 그 시절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 운동화를 신고 다녔을까요. 그 운동화가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으니까요. 제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제 친구 M도, J도, L도, K도 그 운동화를 신고 다녔습니다. 그러니까 L으 운동화는 저의 운동화이기도 하면서 M과 J와 L과 K의 운동화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운동화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 사실 이 216페이지의 이 문장이 이 책에서 하고자 했던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누구나 읽으면 바로 이한열이라는 사람을 떠올리게 되는 그 유명한 사람을. 왜 굳이 제목에서 L의 운동화라고 표현했을까? 그 이유가 바로 이 문장에서 나오지 않을까 싶다. 아까 위에서 했던 이야기와 반대로, 이 책은 외려 '특정짓지 않음' 으로 그것은 '우리 모두'의 것이라고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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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죽이기, 하퍼리/박경민 한겨레 1993
독서모임 초이를 시작했다고 이야기했던가. 초등학교 2학년때 처음 알게된 친구와 독서모임을 만들었다. 독서모임을 하고 싶어 알아보던 중 마음에 드는 모임이 없어서 고민하던 찰나에 친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고, 자신도 그런 모임을 하고 싶었다며 둘이 같이 할까? 라는 이야기에, 그래. 하자. 하고는 무심결에 만들어진. 우리의 독서모임.
처음에는 걱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독서모임에 대한 경험이 전무했던 우리였으니까. 이렇게 하는게 맞는건지 봐주는 사람도 따로 없었고. 그렇지만, 서로 부담갖지 않기로 했다. 그저 우리가 즐기는대로 책을 읽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자고. 그래. 그거면 됐지.
독서모임이 진행 될수록 우리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둘이어서 할 수 있는 이야기들과 오랫동안 알아왔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우리는 나눌 수 있었고, 그것은 다른 독서모임에서는 분명 느끼지 못할 감정과 나누지 못할 이야기들이란걸 우리는 서로 어느정도 눈치채고 있었다. 우리의 독서모임은 그렇게 무심결에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첫 책으로 내가 읽은 책은 앵무새죽이기.
사실 하퍼 리는 정말 대단한 작가다. 일생에 단 한권의 책을 내놓고 그 한권으로 모든 부와 명예를 얻음으로 인해 그 이후의 책을 내지 않아도 되는 부귀영화를 누렸으니까. 그것에 대해 김연수인지, 김영하 작가가 한 이야기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낳은 자식같은 글들이 세상에 태어난 이후에 돌팔매질을 받고 평가를 받는 모든 부분은 작가가 감수해야하니까. 그리고 그런 상처를 받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것은 작가로서 씁쓸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상처를 받지 않아도 될 기회를 얻은 하퍼리가 부럽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앵무새죽이기라는 책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나쁜 기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나쁜 기억을 어느정도 깨고 시작을 하고 싶었다. 각설하고, 앵무새죽이기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나는 죽은시인의 사회를 읽었을 때와 비슷한 것을 느꼈다. 혹자들은 이 책이 흑인에 대한 편견과 인종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만으로 이 책의 대단한 점을 이야기하는데 나에게 더욱 와 닿은 것은 부모로서 자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대해야하는가? 라는 관점이었다. 핀치가 스카웃을 대할 때, 사고와 생각들을 천천히 따라가다보면 내가 후에 부모님이 되었을 때 내 자식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어느정도 찾을 수 있게 되지 않나 싶은 마음. 그만큼 핀치는 굉장히 선명하고 이상적인 부모의 상을 나타내고 있는 듯 싶다. 그래서 내가 죽은시인의 사회의 존 키팅 선생님이 생각났던 걸 수도.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인종차별에 대한 문제제기' 론적인 관점이 아니라 '어른으로서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방법'론적인 관점에서 더욱 흥미가 갔고, 그렇게 읽혔던 것 같다. 핀치뿐 아니라 앵무새죽이기에 나오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해주는 말 하나하나는 굉장히 명료하고 메시지 자체가 주는 울림이 크다. 어린 아이들의 올바른 가치관을 잡아주려고 애쓰려고 한달까나. 내가 어렸을 때 그런 말을 해주는 어른들이 내 주위에 있었으면- 하고는. 그리고 나도 그런 어른이 되었으면- 하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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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6
첫째로, 스카웃 네가 아주 간단한 요령을 배운다면 넌 모든 사람과 훨씬 잘 지낼 수 있을거야. 그건 그들이 보는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는 한 절대로 그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거지/ 네가 그들의 입장이 되어봐야 한다는거야.
p.118
"난 다시는 너희들에게 내 말을 들으라고 명령할 수가 없게 되거든. 스카웃, 모든 변호사들은 말이다. 그의 생애 중 한 인간으로서 가장 중요한 공판이 한 가지는 있는 거란다. 이 아빠한테는 이번이 그렇단다. 앞으로 학교에서 이 일에 대해 불쾌한 일을 겪게 될거다. 하지만 나를 위해 네가 해줄 일이 있다면 그건 머리를 높이 들고 주먹을 내려놓는거야.
p.184
글쎄다. 제 정신을 갖고 있는 사람은 자신의 재능을 자랑하지 않는단다.
p.148
내가 아는 걸 모두 다 말할 필요는 없단다. 그건 첫째, 교양 있는 일도 아니고, 둘째, 사람들이란 자기보다 더 많이 아는 사람이 주위에 있는걸 좋아하지 않는 법이거든. 더욱 화만 나게 할 뿐이지. 옳은 일을 지적해줘도 전혀 바꾸려하지 않는단다. 그들이 배우길 원하든 말든 그저 그들의 방식대로 따라가 주는 것이 최선이란다.
p.312
그걸 생각해보렴. 그건 우연이 아니야. 나는 지난 밤 현관에 앉아 기다렸단다. 너희들이 길가에 나타나길 기다리고 또 기다렸지. 그러면서 생각했단다. 애티커스 핀치는 이기지 않았다고. 아니, 이길 수 없었다고. 하지만 그는 이 정도의 재판으로 배심원들을 그렇게 오랫동안 고민하게 만든 최초의 변호사였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내 자신에게 말했단다. 그래, 우리는 걸음을 내딛고 있는거야ㅓ. 지금은 아가의 걸음마 정도지만 그것도 걸음은 걸음이라고 말이다.
p.330
그렇다면 왜 그들은 함께 어울릴 수 없는걸까? 그들이 모두 동등하다면 왜 고의적으로 서로를 경멸할까? 스카웃, 난 이제 무엇인가를 이해하기 시작한 것 같아. 난 왜 부 래들리가 집 안에만 틀어박힌 채 살아가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아. 그건 단지 그 안에 머물고 싶기 때문일거야.
p.394
아버지 말씀이 옳았다. 아버지는 남의 입장에 서보지 않는 이상 결코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었다. 래들리 집 현관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그건 충분했다.
p.399
만약 이 일을 이대로 무마시켜버린다면 내가 그 아이를 길러온 방식이 간단히 부정되어 버릴거요. 때때로 난 부모로서 부족함을 느끼기도 하오. 하지만 난 아이들의 전부라고 할 수 있소. 젬은 다른 사람을 보려하기 이전에 내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나 역시 그 아이들을 정정당당히 되돌아 볼 수 있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소. 내가 만약 오늘 같은 일로 무언가를 묵인한다면 솔직히 난 그 아이 눈을 쳐다볼 수도 없고, 그를 잃게 된다고 가정한다면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소. 젬과 스카웃을 잃고 싶지 않소. 그 아이들은 나의 전부이기 때문이오.
-
헥, 내 입장을 생각해봐요. 당신도 아이들이 있지만 내가 당신보다 더 나이를 먹었소. 저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난 늙어있을 겁니다. 물론 그때까지 살아 있다면 말이오. 당장 지금 나를- 그 아이들이 나를 믿지 않게 된다면 그들은 아무도 믿지 못하게 될 거요. 젬과 스카웃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소. 만일 그 아이들이 내가 한 말과 다른 것을 마을사람들에게서 듣고 온다면- 헥, 난 더이상 아이들을 다룰 수 없을 거요. 나는 집에서와 마을에서의 삶을 각각 다른 식으로 살아갈 순 없소.
마지막 문장이 내가 느낀 이 책의 핵심문장이다. 핀치가 스카웃과 젬을 얼마나 생각하는지 알 수 있는 장면. 앵무새죽이기가 인종차별론적인 이야기가 핵심이 아니라 그 속에 스며들어가있는 어른으로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하는지, 부모로서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어야하는지 알려주는 것이 핵심이 아닌가 싶게 만들었던 바로 그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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